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펠리페 6세 (문단 편집) == 재위 ==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건강 악화 및 사치스러운 행동에 대한 국민의 비난에 책임을 지고 2014년 6월 18일 퇴위하여, 6월 19일 0시를 기해 [[스페인]]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스페인/경제#s-3|스페인의 경제 위기]] 및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조별리그 탈락 등[* 참고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은 [[1954 스위스 월드컵]],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70 멕시코 월드컵]], 그리고 [[1974 서독 월드컵]]의 4개 대회를 예선탈락으로 나가지 못한 것 외에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조별탈락을 한 번 한 적이 있다. 그만큼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조별라운드 탈락은 국가적인 충격이었던 셈. 더욱이 메이저 대회 3연패를 기록한 팀이자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이 조별리그 2연패로 조기 탈락하였기에 충격이 더했다.] 국가적 악재 때문에, 화려한 축하 행사는 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대관식]][* 다만 스페인은 1379년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후안 1세(카스티야)|후안 1세]] 이후로는 대관식을 하지 않았다. [[아라곤 왕국]]으로 범위를 넓혀도 1414년 [[페르난도 1세(아라곤)|페란도 1세]]가 마지막이었으며, [[나바라 왕국]]은 1484년 [[카탈리나(나바라 왕국)|카탈리나]]와 [[호아네스 3세]]가 마지막으로 대관식을 치렀다.] 등 전통적인 [[가톨릭]] 예식도 배제했다. 그리고 같은 날 왕위 승계와 왕정 유지에 반대하는 공화파 시위가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인 솔 관문 광장을 비롯한 스페인 전국에서 터졌고, 이 과정에서 3명이 연행되면서 어쨌든 결과만 보면 즉위 첫날부터 반대파 정치범에 탄압을 가한 국왕이 되어버렸다.[* 사실 치안 문제를 비롯한 스페인의 국가 행정 대부분은 법적으로 행정부의 책임이지, [[스페인 국왕|왕]]의 책임은 아니긴 하다. 스페인은 엄연히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제]]'''이지, [[전제군주제]]가 아니기 때문. 그러나 군대, 경찰, 사법계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스페인 [[인민당(스페인)|보수]] [[복스(정당)|우익]] 세력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프랑코 정권|독재 정권]] 시절부터 각종 혼맥과 인맥으로 결속되어 있는데 이들의 구심점에 스페인 보르본 왕가가 있다. 따라서 왕실에게 책임의 화살이 날아간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제|입헌군주국]]이지만, 국정의 많은 부분이 사적인 이해 관계로 움직이는 나라 스페인에서 그 사적 이해 집단의 중심에 바로 스페인 보르본 왕가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펠리페를 향한 기대감은 꽤 큰 편이었기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6&aid=0000491251|한 조사에서 국민들로부터 66%의 지지를 얻었다.]] 추문으로 왕실의 지지도가 바닥을 치고 [[입헌군주제]] 자체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절반을 넘는 와중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지지다. 기본적으로 낡은 왕실에 불어올 새로운 바람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펠리페 자체가 가진 소탈하고 수더분한 매력이 많은 호감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평가다. 즉위 직후 첫 공식 외국 방문지는 [[바티칸]]으로 결정되었으며, 6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했다. 이어 다음 달 7일에는 [[모로코]]를, 14일에는 [[포르투갈]]을 방문하는 등 주변국을 잇달아 찾았다. 9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해 스페인의 2015년~201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에도 힘을 보탰다.[* [[스페인]]은 [[뉴질랜드]] 및 [[터키]]와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2017년 들어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자체독립 투표를 실시하고 [[카탈루냐 독립운동]] 문제가 불거지자 국왕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9588388|#]] 스페인 왕실의 입장은 "[[스페인 헌법]]에 위반되기에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용인될 수 없다"로 요약될 수 있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의 독립 움직임에 '자치권 몰수'라는 강경카드로 압박하고 있다. 2019년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다시 커지자 가족들과 직접 [[바르셀로나]]에 방문하였다. 특히 왕위 계승자인 레오노르 공주가 펠리페 6세 국왕이 수여하는 청년공로상 시상식에서 카탈루냐어로 연설하는 등 반독립 여론을 결집시키기 위해 노력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188976|#]] 2020년 [[코로나 19]] 사태에 겹쳐 8월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각종 비리 문제로 국외 망명을 떠나면서 분노한 국민들의 왕정 폐지 여론이 매우 높아지고 있어, 펠리페 6세에게도 최대의 정치적 위기가 찾아온 상태이다. 펠리페 6세는 아버지 유산의 상속을 포기한다고 발표하고 전직 국왕에게 지급되는 국가 연금도 취소했다. 2021년 3월 25일. 스페인 국왕으로 역사상 첫 [[안도라]] 공식방문이 이뤄졌다.[[https://www.elperiodico.com/es/sociedad/20210325/reyes-recibidos-andorra-11610275|#]] 한국에는 2019년에 수교 70주년을 기념하여 국빈방한했었고, 그 답방 성격으로 2021년에 [[문재인]]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했었다.[* [[코로나 19]] 이후 스페인이 처음으로 초청한 국빈이다.] 2022년 6월 28일에는 마드리드 궁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만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